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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인생 이야기

나는 참 행복한 사람입니다

by 킴차카 2025. 6. 26.

 

팟캐스트해설/달동네 교회

남은 인생의 여정이 선명히 보이는 현재 저는 만 63세입니다.

28년전에 이곳 남가주로 이민 왔으니 35년은 고국에서 살았습니다...

48년전 고교 1년 시절, 많은 방황을 할 때 함께 해주셨던, 평생의 등대처럼 제 마음의 빛이 되어 주셨던 만남에 대한, 조금은 내밀한 저의 이야기를 조심스레 펼쳐봅니다.

🌿 나는 참 행복한 사람입니다

달동네 작은 교회에서 만난 하나님의 사람들

나는 가만히 돌아보면, 참으로 복된 인생을 살아온 사람입니다.
수많은 만남 속에서 너무도 선하고, 귀하고, 아름다운 사람들을 만나왔고, 그것은 분명 하나님의 선물이라 믿습니다. 오늘은 그 축복 같은 인연들 중, 제가 중학생 때부터 다녔던 달동네 교회에서 만난 하나님의 사람들, 그리고 그분들을 통해 예수님을 만났던 기억을 담아보고자 합니다.

Jesus Christ Superstar - Choir Friends of Modern Music

 

🏚️ 철거민 마을에서 시작된 신앙의 여정

저는 서울의 한 철거민 이주촌에서 자란 오남매의 장남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엄격하고 다소 폭력적인 분이셨지만, 자식들을 굶기지 않으셨고, 명의만 불하받은 시유지 땅에 무허가 건물을 짓고라도 자식들을 남의집살이를 시키지 않으셨던  분입니다. 어머니는 늘 마음이 따뜻하고 착하신 분이셨고, 어느 날 동네 인근의 작은 교회를 다니시기 시작했습니다.
저도 중학교 무렵, 어머니를 따라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고, 그곳에서 인생의 방향이 바뀌는 은혜를 입게 되었습니다.

🙏 한명철 목사님, 그리고 진짜 목자

고등학교 1학년 때, 저희 교회에 부임하신 한명철 목사님은 지금도 제 인생의 ‘참목자’로 남아 계신 분입니다. 6.25 전쟁 때는 장교로, 이후에는 교사로, 그리고 마침내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40이 넘은 나이에 신학을 시작하시고 목사 안수를 받으신 분이셨죠.

목사님은 그 시절, 영등포 인근의 나환자 마을에서 그들과 함께 하시며 복음을 전하고 재활을 돕던, 그런 사랑의 실천자셨습니다.

'염광장'이라 부르던 서울 근교의 한센인 거주촌은 늦은 나이에 신학교를 가신 당시 전도사셨던 목사님이 아무도 지원자가 없어 스스로 자원해 가신 두루 열악한 곳이었습니다..몇년을 주말마다 온가족이 함께하셔서 사역하시던중 그 뜻에 동참하는 대학생들과 청년들이 차츰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목사님과 그분들의 헌신과 사역으로 한센마을의 주민들은 단합하기 시작하였고 피부병 특효약을 목사님의 지혜로 개발하여 자립을 넘어 부유한 곳으로 변했습니다..

한센인 자활사역

그곳의 사역은 이제는 본인이 없어도 누구든 희망하는 곳으로 만드신 후, 목사님은 철거민 달동네 교회인 ,당시 담임목사님 없이 1년여를 보내온 저희 교회로 가족들의 간곡한 만류도 뿌리치시고 부임하시게 되었습니다...

그분의 목회철학을 따르던 많은 대학생들과 청년들도 매주말이면 먼 거리에도 불구하고 저희 교회에 와서 봉사하셨습니다. 전철 두 번, 버스 한 번, 왕복 세 시간의 거리였지만 단 한 번도 힘들다 하지 않으셨습니다.어떤 분들은 금요 철야 예배에 오셔서 주일인 일요일 저녁 예배를 마치고 2시간여의 귀가길을 택하셨습니다..

▲ 철거민들이 모여 살던 노원 '나눔의 집'을 방문하는 캔터배리 주교 일행. 20년 전 대학생 4명이 시작한 나눔운동이 이제는 7개의 센터의 규모로 확대되었다. ⓒ뉴스앤조이 유헌 [출처: 뉴스앤조이] 달동네 야학에서 시작한 빈민선교 20년

🎶 그 선생님들이 우리에게 보여준 '예수님의 사랑'

그 시절, 저희 교회에 오시던 대학생 선생님들은 정말 다양한 분들이었습니다.
어떤 분은 약학대학 졸업반이시며 약사고시를 준비하고 계셨고, 어떤 분은 공과대학에서 공부하시고 대학원을 준비중에 계셨으며, 또 한 분은 당시 유명 탤런트 유지인 씨와 함께 중앙대 문예창작과를 다니던 분도 계셨습니다. 또 한 분은 고졸 후 바로 사회에 나와 성실하게 일하며 결국 국내 굴지의 화장품 기업에서 중요한 직책을 맡게 되신 분도 계셨습니다.

그분들은 단지 주일학교 선생님 이상의 존재였습니다.
달동네 아이들인 우리에게 삶의 가치, 존재의 의미, 생존 너머의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해주셨고, 종로 뒷골목 메밀소바 한 그릇을 사주시며, 서점과 미술관, 그리고 뮤지컬까지 경험하게 해주셨습니다.

그때 선생님들 덕분에 종로 뒷골목 식당에서 처음 먹어 보았던 일본식 메밀소바의 사각 대나무 채받침의 국수 그릇과 달콤,시원, 쌉싸름하면서도 너무 맛있었던 그 맛이 아직도 가끔 기억날 때마다 마음이 따뜻해지고 눈가가 촉촉해집니다.

그분들의 배려로 버스로 전철로 한시간 반 이상의 거리인  중구 정동  MBC에서 멀지 않았던 '이화여대 대강당'에서 공연된 당시 선풍적 인기였던 '육완순'교수의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초연은 , 저에겐 처음 접해 보는 뮤지컬이었고, 이후로 연극과 문화 예술을 사랑하는 동기가 되었습니다.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2024

돌이켜 보면 직업 가진 분이 거의 없었던 선생님들이 용돈등을 아껴서 달동네 청소년들 10여명의 티켓과 교통비를 마련해 주신 생각을 하니, 성인이 된 이후로 지금까지 스스로를 반성하며 마음이 훈훈한 일이 되었습니다.

사춘기 달동네 소년에겐 교회와 목사님과 선생님들이, 마음과 영혼의 안식처 였고, 인생과 철학과, 문화 예술에 대해 눈을 뜨게된 결정적 계기가 되었습니다..

Museum] 육완순 안무 ‘수퍼스타 예수 그리스도’

👩‍🦰 세 분의 누님, 제 인생의 등대 같은 분들

그 시절 그 교회에서 만난 분들 중, 평생을 잊을 수 없는 세 분의 ‘누님’이 계십니다.

1. 씩씩했던 동네 누님

저보다 한 살 위셨던 이 누님은,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상업고등학교에 다니시며 늘 바르고 씩씩하게 사셨습니다. 조금의 부당함에도 당당히 맞서며 조리있게 당신의 주장을 말하곤 하셨던 모습은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제게는 따뜻하게 집에서 밥도 챙겨 주시곤 하셨습니다.

이민후  연락이 끊겼다가, 7~8년 전쯤 다시 연락이 닿아 지금은 카톡으로 안부를 주고받으며 여전히 씩씩하고 아름답게 살아가시는 모습을 보고 참 감사합니다.

2. 천사의 눈을 가진 누님

또 한 분은, 여고 시절 큰 화상을 입고 긴 재활의 시간을  겪으셨던 분입니다.
하지만 그분의 마음은 누구보다 따뜻했고, 그 누님을 통해 저는 처음으로 미술이라는 세계를 접했습니다.
자신의 용돈을 털어 전시회를 데려가주시고, 미우라 아야코의 '빙점' 같은 책도 권해주셨습니다.

당시 데려가 주셨던 '국립현대비술관'

나이는 십여년 정도 많으셨지만 늘 함께해주셨고 미술과 문학의 깊고 아름다움도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현재도 연락하고 지내며 지금도 미술에의 열정을 변함없이 갖고 계십니다..


그 안경너머 선하신 누님의 눈빛은, 지금도 제 마음속에 선명합니다.

3. 방황하던 고등학교 시절의 구원자

세 번째 누님은 제 여동생의 주일학교 선생님이셨고, 제가 고교 2년 초여름, 선친과의 갈등으로 가출했을 때 하월곡동의 단칸방에서 저를 한 달 가까이 돌봐주신 분입니다.


혼자 자취하며 공무원으로 일하시던 분이었는데, 도시락을 싸주시고, 차비를 챙겨주시고, 함께 밥을 먹고 잠을 자며, 저를 지켜주셨습니다. 이름도 기억 못하고 그 이후 연락이 단절되어 정말 죄송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땐 서로 이성의 감정보다, 사람에 대한 절절한 배려와 보호,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을 느꼈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 지금도 그 은혜가 가슴에 남습니다.

당시 한달 있었던 곳과 비슷한 이미지

🌱 그래서 나는 지금도 “행복한 사람”입니다

이 모든 기억은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축복의 선물입니다.

달동네 작은 교회, 그곳에서 만난 목사님과 대학생 선생님들, 그리고 누님들.
그분들을 통해 저는 예수님의 사랑을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고, 마음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사람은 먹기 위해 사는가, 살기 위해 먹는가", 그 시절 이 주제로 학생예배후 열띤 토론을 하게 해주셨던 선생님의 화두가 평생 머리속를 맵돕니다.


그 질문에 대한 제 대답은 아마 그때 이미 마음속에 자리했을 겁니다.
사람은 사랑하고, 사랑받기 위해 살아간다는 것.
그 진실을 그분들 덕분에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저는 감히 말합니다.
“나는 참, 행복한 사람입니다.”

 

[4K] 정두영 - 사랑은 언제나 오래참고 :: Vn. 정하나, Vc. 심준호, Pf. 송영민